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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원순씨] 희망을 심다

2011/09/20 15:43
"착한 사람들의 뜻을 모아내고 좀 더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일상속에서 만들어가고 싶었다.
누구나 쉽게 생활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1퍼센트나눔운동,
헌 물건을 통한 순환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아름다운가게,
가난한 홀어머니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인 아름다운세상 기금이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에서 벌인 사회적 실험들이었다."
 
인터뷰 전문작가 지승호 씨가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쳐 인터뷰하고 정리한 책(알마 출판사)의 서문입니다.

*****
고난을 즐기며 희망을 나누며

고난의 내재화

  농촌은 이제나저제나 늘 쉼 없는 노동으로 날이 새고 밤이 진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농촌에서 자랐다. 비교적 유복했지만 그래봐야 농부의 집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부모님은 이미 들판에 나가셨거나 쇠죽을 끓이는 중이었다. 비가 오면 후다닥 일어나서 한밤중에도 볏단을 정리하셨고, 잠든 내 머리맡에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엮곤 하셨다. 부지런히 일하시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소 꼴을 뜯거나 소를 먹이러 동네 산을 올랐으며, 갱변(강변)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 읍내 중학교까지 왕복 30리 길을 걸어 다녔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나는 독서실과 입주과외, 전셋집을 전전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에서는 몇달 다니지도 못하고 대학 캠퍼스를 뒤로 한채 감옥행을 면치 못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복학이 되지 않아 방랑의 세월을 보냈으며, 그 와중에 고시공부에 매달려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 모든 것은 어린시절 그 농부의 일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난의 삶의 내재화라고 할까. 언제부턴가 나는 이 고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 후 검사라는 영광의 길이 내게 맞을 리 없었다. 온 세상이 감옥이었던 시대, 차라리 고난의 길에 서 있는 수인들의 편을 드는 것이 마음 편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고 언제 그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그 순간에도 자유와 인권, 정의의 새 세상을 꿈꾸는 일은 역설적으로 내겐 행복한 일이었다.


동은 터 왔는데

  오히려 민주화 이후의 세상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상식적인 세상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다시 행군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턱없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여전히 황무지를 쟁기로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참여연대 7년의 세월은 이렇듯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 부패, 그리고 권위주의와 싸웠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고히 하고 맑고 깨끗한 사회로의 전환, 비인간적 사회의 인간화 그리고 합리적 사회를 만들려고 애썼던 '땀 흘림'의 시기였다. 반부패운동, 소액주주운동, 국민생활최저선운동, 낙천낙선운동의 회오리바람 속에 내 40대 '청춘(?)'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착한 사람들의 뜻을 모아내고 좀 더 나누고 배려하는 삶을 일상속에서 만들어가고 싶었다. 누구나 쉽게 생활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1퍼센트나눔운동, 헌 물건을 통한 순환과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아름다운가게, 가난한 홀어머니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인 아름다운세상 기금이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에서 벌인 사회적 실험들이었다.


또 일을 저지르고

  2004년 여름, 3개월 그리고 2005년 한 학기를 독일과 미국에서 여행과 강의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없는 기간에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는 오히려 더 발전하고 있었다. 이 단체들에서 내 존재의 효용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실험을 꿈꾸었다.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씽크 탱크, 현장과 실용을 테마로 하는 새로운 실학운동, 작고 구체적인 사회 프로젝트, 이런 것들이 당시 내 머릿속을 지배했던 화두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4월, 희망제작소가 닻을 올렸다. 소셜 디자이너 Social Designer 라는 명함을 들고 국내외를 동분서주한 끝에 여전히 뿌리 깊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후 3년 동안, 나는 또다시 보람과 후회의 이중주 속에 살고 있다. 늘 시작은 힘든 법이다.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좋은 마무리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창안사업, 농촌희망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소기업일으키기, 한국형마츠시다정경숙 만들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피하지 못할 바에는 받아들여라"라는 말이 있다. 일을 벌이고 후회하는 이 악순환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함께하는 행복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내가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다닌 것 같다. 뭔가 의미 있는 성취가 있었다면 그것은 함께한 젊은이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의 궤적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 순간에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있다. 앞서 말한 젊은이들 외에도 내가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비전에 동조하면서 기꺼이 회비를 내주는 수만의 회원들과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의 가게와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좋은 변화와 개혁에 조금이라도 내가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 또한 이분들의 공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어쭙잖은 회고

  언제부터인지, 어느 자리를 가도 상석으로 안내되고 어느 모임을 가도 위원장이니 대표니 하는 감투들이 씌워진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나는 아직 현장에서 펄펄 뛰고 싶은 영원한 실무자다. 아름다운가게 간사들의 신년회에서 '과로사'가 내 꿈이라고 말했더니 다음날 간사 한 분이 내 책상 위에 <과로사 이기는 법>이라는 헌 책을 가져다 둔 적이 있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현장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것은 양보하기 어려운 내 꿈이다.

  그런데 이번 (주)알마 출판사의 제의에 따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정리된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정리'가 되고 '회고'가 되고 말았다. 회고라니! 아직 나는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향해 달리고 싶은데. 아직도 온 길보다는 가야 할 길이 훨씬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아뿔싸! 내가 알마의 정혜인 대표와 지승호 작가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러나 이제 몇 고개를 넘어 다른 고개를 향해 움직이기 전에, 잠깐 땀을 식히는 기회로 생각하여 애써 위안을 삼는다. 내 작은 경험을 공유하고 잘못을 돌아보는 기회라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그리고 지나간 시절의 잘못과 회한을 반추하고 다가올 고난을 더 잘 헤쳐가기 위한 재충전의 쉼이라 희망하면서 이 부끄러운 삶의 궤적을 내놓는다.


2009년 3월 20일
안국동 사무실 창문 너머 다가온 봄을 맞으며,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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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다 (알마 출판사, 지승호 인터뷰 집) 서문
2011/09/20 15:43 2011/09/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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