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원순씨^^ 자랑하지 못 하는 원순씨를 꼼꼼히 분석하는 시간입니다.
단골침수지역 망원동의 수해가 천재지변이 아니라 서울시와 건설사의 유수지 시공, 관리 잘못으로 초래된 인재라는 것을 6년만에 증명. 책임 회피를 일삼는 공권력의 타성에 제동을 걸고 시국사건에 국한돼 있던 인권변호사들의 활동을 집단 민사로 확장. 1985 부천서성고문사건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4학년 권인숙씨가 경기도 부천 공장에 위장 취업 후 경찰서에 연행. 문귀동 형사가 성추행 하면서 고문. 당시 공권력이 추악하게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 1985년 미문화원사건
서울대, 고려대 학생 73명이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미국이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에 대한 지지 내지 방조에 대한 미국의 책임 문제 거론하며 시작. 미국문화원에서 시위하다 19명이 구속 기소. 반미시위로 광주민주화운동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계기 마련.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고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보도지침을 작성하여 은밀히 시달.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584개 보도지침 내용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전달. 9월 ‘말’지가 폭로하며 정부의 언론 통제를 국민에게 알림. 이 사건으로 ‘말’지 발행인, 기자 등 3인이 국가 보안법 위반 및 국가 모독죄로 구속
전국 26개 대학 2천 여명이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 통일 3대 구호를 내걸고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건국대에서 집회 개최. 전두환 정권은 공권력 투입하여 1,289명 구속. 연행된 학생들은 용공좌경 분자라는 죄목 적용
공안검사 김원치가 한국 최초의 역사서 ‘한국민중사’를 출판한 나병식을 구속한 사건. 좌파적인 성향의 기사와 출판물이 모두 검열 대상이거나 폐간되었고, 이전까지는 판매 금지 였으나 최초로 구속된 사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전두환 공안당국에 붙잡혀 취조실로 끌려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가하여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조사실에서 사망. 이 사건은 6월 항쟁 (1987년 전국민주화시위) 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됨.
서울대학교 우조교가 신모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 6년간의 법적 투쟁 후 신모교수가 우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생김. "원순씨와 10cm 더" 분류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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